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루이 11세 (문단 편집) === 즉위하기 이전 === 부왕 샤를 7세가 잉글랜드군과 부르고뉴군에 밀려 쫓겨다니던 엄혹한 시절에 태어났다. 어린 시절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못해 급기야 그가 싫어하는 아버지의 애첩인 [[아녜스 소렐]]에게 칼을 들고 죽이려 난동을 부렸을 정도로 사이가 몹시 나빴다. 물론 이 일로 루이는 화가 난 아버지에 의해 궁전에서 쫓겨나 지방으로 좌천되었다. 1440년 17세 때 귀족들의 반란인 '''프라그리의 난'''에 가담했으나 실패하여 이후 17년 동안 [[도피네]]에 유배되었다. 유배에서 풀려난 이후에도 역시 음모에 가담하여[* 권모술수와 모략, 음모 꾸미기에 능해 별명이 '''세계의 거미'''였다고 한다.] 1456년 [[부르고뉴국]]으로 도망가 [[7촌]] 아저씨되는[* 루이 본인은 [[장 2세]]의 장남 [[샤를 5세]]의 증손자였고, 선량공 필리프 3세는 장 2세의 막내아들 호담공 필리프 2세의 손자였다.] [[선량공 필리프|선량공 필리프 3세]]의 비호를 받았다.[* 당시 프랑스와 부르고뉴는 썩 멀지 않은 친척 관계임에도 불구하고, 계속된 음모와 암살 사건으로 사이가 몹시 나빴으며 서로 적대시하는 사이였다.] 그후 아버지인 샤를 7세와는 평생동안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